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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이슬람이 바꾼 영국축구문화③

영국에서 기독교와 축구는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였다. 특히 19세기에 나타난 '강건한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 운동은 대중의 인격 발전과 건강을 위해 규율, 자기희생,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스포츠를 장려했다. 이에 스코틀랜드의 명문 클럽 셀틱과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 에버튼, 사우스 햄튼 등이 교회의 주도로 창단했다. 이렇듯 영국축구의 곳곳에서 기독교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수한 기량을 가진 무슬림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꾸준히 늘어나면서 영국축구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EPL에서 경기의 최우수 선수(MOTM, man of the match)로 선정되면 부상으로 샴페인 한 병이 수여됐다. 하지만 무슬림 선수들에게 술은 금지된 음식인 하람(haram)에 속한다. 2012년 맨체스터 시티 소속이었던 야야 투레는 뉴캐슬을 상대로 두 골을 기록, MOTM으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투레는 TV인터뷰에서 종교적인 이유로 상을 받기를 정중히 거절했다. 이를 계기로 샴페인을 부상으로 주는 전통이 사라졌다. 지금은 MOTM이 작은 트로피를 받는다.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독일축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스타로 바이에른 뮌헨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프랭크 리베리는 알제리 출신의 여자 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2005년 무슬림으로 개종했다. 2012~13시즌 뮌헨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자 제롬 보아텡이 동료인 리베리에게 맥주를 부으며 우승을 자축했다. 무슬림인 자신에게 술을 부은 보아텡에게 단단히 화가 난 리베리는 "그와 다시는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도박회사들이 EPL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 클럽의 주요 셔츠 스폰서로 등장하자, 무슬림 선수들은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도박회사를 홍보하는 것은 이슬람 교리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프랑스 출신 무슬림으로 EPL의 토트넘을 거쳐 라리가의 세비야에서 활약했던 프레데리크 카누테라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세비야가 온라인 도박 업체 888 com와 셔츠 스폰서십 계약을 맺자, 셔츠를 임의로 개조해 스폰서 로고가 잘 안 보이게 했다. 이에 세비야는 어쩔 수 없이 카누테에게만 스폰서 로고가 들어가지 않은 셔츠를 매 경기 지급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무슬림 선수들은 클럽의 스폰서십 계약은 자기들이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골 세리머니는 경기에서 무슬림 선수들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무슬림 선수들은 골을 기록한 후에 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잠시 땅에 머리를 대는 동작을 한다. 수주드(sujood)라 불리는 이러한 의식은 무슬림이 신 앞에서 느끼는 겸손함을 보이는 예배 행위다. 수주드를 행할 때 무슬림 선수의 얼굴은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향한다. 잉글랜드 축구 레전드로 BBC의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매치 오프 더 데이(Match of the Day)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게리 리네커는 2012년 이러한 수주드 의식을 빗대어 “잔디를 먹고 있다(eating grass)”고 농담한 적이 있었다. 이에 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리네커는 자신의 부주의를 사과했다. EPL에서 무슬림 스타들의 비중이 늘어남에 따라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이슬람의 관행에 친숙해지고 있다. 공원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골을 넣은 후 기도하는 의식을 흉내 내기도 한다. 아울러 살라가 리버풀 FC에 합류한 이후로 리버풀 지역에서 반 이슬람 혐오 범죄가 약 19%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에서 반(反) 이슬람 정서는 여전히 강하다. 이영표 선수의 토트넘 동료로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미도(Mido)란 선수가 있었다. 그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팬들로부터 “너의 엄마는 테러리스트”라는 조롱을 비롯해 여러 차례 반 무슬림 학대를 받았다. 2019년 리버풀의 영웅인 살라도 런던 원정 경기 중 웨스트 햄의 팬들로부터 무슬림을 비하하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중부지역에 위치한 레스터는 이민자에게 개방적인 도시이다. 이로 인해 레스터에서 무슬림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은 약 19%에 이른다. 따라서 레스터 시티의 경기 중에는 상대방 팀 팬들이 ‘레스터 탈레반’이나 ‘폭파범으로 가득 찬 도시(Town full of bombers)’라는 야유를 퍼붓기도 한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는 이슬람이다. 2000년대 들어 이슬람 인구는 비(非) 이슬람 인구보다 10배 가까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슬람의 영향으로 영국축구문화가 변하고 있듯이, 영국의 대중문화와 정치도 계속해서 이슬람화 되어가고 있다. 유럽이 이슬람화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유라비아(Eurabia)라는 신조어도 있다. 유라비아의 수도는 런던이스탄(Londonistan)이 될 것이라 한다. 지금같이 세계화와 다문화가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특정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쉽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무슬림 이민자들은 기존 사회와 잘 융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더 염려스러운 점은 젊은 무슬림들이 더 과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발표된 조사에 의하면 영국에 사는 16~24세 무슬림들의 40%가 이슬람 율법을 영국 법보다 중요시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같은 대답을 한 55세 이상의 무슬림들은 17%에 그쳤다. 아울러 무슬림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면 죽음으로 이를 다스려야 한다는 대답이 젊은 층에서는 무려 36%가 나왔다고 한다. 영국정부의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다. 유럽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이슬람 인구가 이렇게 영국 혹은 유럽에 많아 진 것은 결국 그들이 자초한 결과이다. 영국인들은 과거 식민지 지배를 통해 진 원죄를 지금 갚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0.12.16 06:00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이슬람이 바꾼 영국축구문화②

"If he’s good enough for you(그가 당신에게 충분하다면), He’s good enough for me(그는 나한테도 충분해)! If he scores another few(만약 그가 몇 골 더 득점한다면), Then I’ll be Muslim, too(그럼 나도 무슬림이 될 거야)!"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에서 서포터스들이 외치는 응원가이다. 여기서 ‘그’는 이집트 출신으로 이슬람 교도인 모하메드 살라를 가리킨다. 물론 리버풀 서포터스들이 실제로 이슬람 개종을 고려하는 건 아니다. 일종의 농담이자 살라를 향한 응원이다.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무슬림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영국축구문화와 팬들의 반응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EPL에서 뛰고 있는 무슬림 선수들은 50명이 넘는다. 레스터 시티의 함자 차우두리만 영국 출신의 무슬림 선수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해외에서 건너왔다. 특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포그바,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오 마네, 아스날의 메수트 외질, 맨체스터 시티의 리야드 마레즈, 그리고 첼시의 은골로 캉테는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들이다. 무슬림 선수들의 존재감이 EPL에서 높아지면서, 클럽들은 그들의 종교적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할랄(halal,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의미)이라고 한다. 야채, 곡류 등 모든 식물성 음식, 모든 해산물, 그리고 이슬람식으로 도살된 쇠고기, 닭고기 등의 육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반대로 술과, 돼지고기 등 무슬림에게 금지된 음식을 하람(haram)이라고 한다. 따라서 EPL클럽은 무슬림 선수들에게 할랄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 팀들은 또한 다른 선수들과 별도로 샤워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무슬림들은 매일 5차례씩 기도하기에 다수의 클럽은 이들을 위해 기도실도 마련했다. 몇몇 구장은 팬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도실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이슬람교 사제를 고용해 원정 경기에 이들을 동행시켜 무슬림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조언을 해주는 역할도 맡기고 있다. 라마단(Ramadan)은 이슬람 달력에서 9월을 의미한다. 아랍어로 '더운 달'이란 뜻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신성한 달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은 이 기간 일출에서 일몰까지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면 안 된다. 기독교에도 이와 비슷하면서 더 느슨한 개념이 있다. 부활절을 포함해 일곱 번의 주일을 제외한 뒤 역으로 계산해 40일간인 사순절이 바로 그것이다. 라마단은 무슬림이 지켜야 하는 의무이지만, 이를 면제해 주는 경우도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금식하다 죽는 건 자살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이슬람 교리상 중범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비상사태에서는 금식하지 않아도 되고, 이는 신이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다. 환자·노약자·임산부·여행자·전쟁에 참여한 군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해외에서 뛰는 스포츠 선수들도 금식을 면제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슬람교도 교리를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종파가 있는가 하면, 엄격하게 적용하는 곳도 있다. 라마단의 양력 날짜는 매년 조금씩 빨라진다. 윤달이 없는 이슬람 달력은 12개의 태음력으로 이루어져 있어, 태양력보다 보통 12일 정도 적기 때문이다. 한 해에 라마단이 2번 있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유럽프로축구의 정규시즌과 4년에 한 번 개최되는 유로나 월드컵 대회 기간과 라마단이 겹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라마단과 축구경기의 일정이 겹칠 때 무슬림 소속 클럽 혹은 대표팀의 고민은 시작된다. 하루 최대 18시간 동안 마시지도, 먹지도 않은 선수들이 90분 동안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에 매일 단식을 고집하는 선수도 있다. 그에 반해 어떤 선수들은 훈련 중에만 금식하고 경기날에는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리버풀의 살라도 경기일에는 단식을 하지 않고, 나중에 빠진 시간을 보충한다. 201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살라는 어깨 부상을 당해 교체됐다. 살라가 없는 리버풀은 결승전에서 결국 1-3으로 패했다. 이어 벌어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살라는 부상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 이집트는 3패로 예선 탈락했다. 이에 살라의 부상은 금식을 어긴 것에 대한 신의 벌이라는 주장이 이슬람 설교가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클럽들은 선수단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에 팀들은 훈련 시간을 저녁으로 옮기기도 한다. 또한 탈수증을 막기 위해 훈련 방식을 바꾸어, 무슬림 선수들의 종교적 편의를 봐주는 클럽도 있다. 하지만 단식 여부를 두고 감독과 선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뉴캐슬과 첼시 등에서 활약했던 뎀바 바는 “금식으로 인해 자신의 플레이가 저조하면 벤치에 앉아 있으면 된다”는 프로답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스토크 시티에서 활약했던 마마디 시디베는 “경기 당일 금식을 하고도 아주 잘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자신은 경기가 있는 날에는 음식을 섭취해 논란거리를 미리 차단한다”고 밝혔다. 시디베의 말처럼 단식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힘들어도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했던 알제리 대표팀이었다. '의리 축구'의 병폐를 보여준 한국대표팀을 상대로 알제리는 아프리카 팀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서 4골을 기록했다. 16강에 진출한 알제리는 독일과의 경기를 앞두고 라마단이 시작되자 많은 고민을 했다. 덥고 습한 브라질에서 금식을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였다. 이에 알제리 선수단을 수행하는 성직자는 희망자에 한해 라마단을 면제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당시 독일대표팀의 에이스이자 무슬림인 외질은 라마단을 지키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으나, 대부분의 알제리 선수들은 이를 지켰다. 결국 알제리는 그해 월드컵 우승팀 독일을 만나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아쉽게 패했다. 이를 두고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라마단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정우 경영학 박사(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0.12.11 06:00
경제

이라크 내전 왜 이리 치닫나

이라크는 이슬람교 수니파와 시아파의 뿌리 깊은 종파 간 갈등이 계속돼 왔다.두 종파의 갈등은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한 이후 누가 그의 자리를 승계할 것인가를 두고 시작됐다. 수니파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회의를 통해 선출된 4명의 칼리프를 합법적 후계자로 인정한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만을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했다. 이후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661년 암살되고서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섰지만, 680년 알리의 차남 후세인마저 반란을 일으키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원한은 더욱 커졌다. 두 종파는 코란을 경전으로 삼는 점은 같지만, 구체적인 교리와 종교의식은 구별된다.전세계 이슬람교도 가운데 수니파가 전체의 85%를 차지하는 다수파이고, 나머지 시아파는 수적 열세를 보이고 있다. 시아파는 이란과 이라크 등에서만 다수 종파다. 시아파가 정국주도권을 잡아온 이란과는 달리, 이라크는 시아파가 다수 종파임에도 수니파가 줄곧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가 박해를 받았다. 시아파 맹주국 이란이 이라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군을 파병한 것으로 알려지고 수니파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개입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에서 촉발된 이라크 사태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미국은 친미정권이 무장단체에 위해 넘어 갈 것을 우려, 계속적인 지원과 평화 유지를 위한 제반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온라인 일간스포츠 2014.06.16 14:04
스포츠일반

말레이시아 바투동굴, 이슬람의 나라에 왜 힌두 사원이 인기지?

동남아시아 중심에 자리한 말레이시아는 주변 국가에 비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1970~80년대 축구팬들에게 익숙한 '메르데카컵 국제 축구대회' 개최국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는 국가다. 현지인들로부터 '신이 내린 재상'이라 불리는 마하티르 수상이 재임 당시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선언했던 '비젼 2020'에 맞춰 정치·경제·산업·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발전을 보이고 있다. 또한 코타키나발루를 비롯해 랑카위·레당·띠오만 등 세계적 휴양지가 베일을 벗으며 우리에게도 가까운 여행지로 다가오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이 수도 콸라룸푸르이다. 이 도시의 상징은 10년 전 당시 세계 최고 건물이었던 88층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452m)이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곳곳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또한 멋진 스카이라인과 맞물려 동서양의 문화가 어울리면서 깨끗하게 정돈된 풍경은 단숨에 말레이시아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콸라룸푸르 최고 명소 바투동굴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60%)·중국계(30%), 그리고 인도계와 원주민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다. 중국계는 19세기 주석을 캐기 위해 중국 본토에서 건너왔고, 인도계는 비슷한 시기 영국이 야자나무 농장에서 일할 일꾼으로 투입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콸라룸푸르는 오히려 중국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세기 중반 밀림이었던 이 지역에 주석을 캐기 위해 몰려들었던 중국인들이 마을을 형성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콸라룸푸르는 도시 역사가 150여년에 불과하지만 볼거리가 적지않다. 대표적으로 인도 이외의 지역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이 있는 바투동굴이 꼽힌다. 바투동굴은 콸라룸푸르에서 북쪽으로 약 13㎞ 떨어진 작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주류를 이루는 국가의 심장부에서 힌두사원이 가장 인기있는 관광코스란 점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 우선 종교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높고, 바투동굴만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1891년 인도에서 건너온 힌두교도들이 사원을 세운 바투동굴은 이후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 열리는 타이푸삼으로 인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타이푸삼은 타이(Thai)와 푸삼(pusam)의 합성어. 타이는 힌두교도의 신성한 달인 1월 15일에서 2월15일까지, 푸삼은 보름달이 뜨는 날을 가리킨다. 3일 동안 진행되는 타이푸삼의 절정은 달이 가장 높이 뜨는 날 고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의식이다. 침·꼬챙이·갈쿠리 등을 이용해 신체 각 부위를 찌른 후 행진하는데 이처럼 힘겨운 고행 속에서도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욱 특이한 점은 최대 수십개의 꼬챙이를 꽂았음에도 피가 거의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굴 입구에는 3년 전 세워진 50m 높이의 거대한 금빛 조형물이 버티고 있다. 힌두교 시바파의 최고신 시바의 둘째 아들로 힘·전쟁·파괴를 관장하는 무루가이다. 하지만 파괴 등과 같은 공포스러운 이미지와 딜리 표정 만큼은 더없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무루가를 지나면 동굴로 오르는 계단이 시작된다. 계단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왼쪽부터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한다. 또한 계단은 모두 272개로 각 계단마다 1부터 272까지 숫자가 새겨져 있다. 힌두교 교리에 따르면 272는 인간이 태어나 지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의 숫자이다. 과거의 계단은 지었던 죄에 대한 용서를 빌고, 현재·미래의 계단을 통해 앞으로 지을 수 있는 죄를 경계하라는 의미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동굴 입구에 이른다. 자비스러운 얼굴의 시바상을 지나면 광장이라 표현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천장까지 높이가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석회암 동굴이다. 아래로 쭉쭉 늘어진 종유석은 메말라 단순한 돌기둥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다. 대신 곳곳에 세워진 힌두신의 형상과 힌두 신화를 그린 벽화가 화려한 장식처럼 늘어서 있다. 동굴광장을 지나 계단을 다시 오르면 또다른 동굴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천장이 뻥 뚫려 있어 하늘에서 광선이 바로 내려온다. 역시 힌두교와 관련된 예배단 등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바투동굴 관람을 더욱 재미있게 해주는 것는 야생 원숭이이다. 이들은 사람이 어색하지 않은듯 오히려 길목에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놈들은 관광객이 던져주는 먹이나 음료수를 받어먹는 것을 넘어 오히려 어린아이들을 보면 빼앗으려고 덤기기도 한다. 이를 쫓으려 무력을 사용하면 떼로 덤벼들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다. ■입헌군주국, 그러나 세습 아닌 순번제 콸라룸푸르에서 왕궁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잘란 이스타나에 자리한 왕궁은 근위병이 없다면 일반 부유층의 저택으로 생각될 만큼 소박하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으로 상징적이나마 왕이 존재한다. 국군 통수권자이고, 수상 등 정부 각료를 임명하기는 하지만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왕위 계승은 세습이 아닌 순번제라는 독특한 제도를 따른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말레이시아는 모두 13개 주가 모인 연방국가이다. 이중 주의 지도자로 세습되는 술탄(Sultan)이 있는 주는 9개. 이들은 각자의 순번에 따라 임기 5년의 국왕에 등극하게 된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왕은 2007년 등극한 트렝가누주의 술탄이다. 약 8만 3000㎡(약 2만 5000평)의 왕궁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으나 정문 주변에서 담 너머로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 가운데 널찍한 잔디 광장이 있고, 그 뒤 숲 사이에 이슬람 사원을 연상시키는 작은 건물이 있다. 왕궁의 입구에 있는 문은 3개. 차량 등이 통행하는 중앙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작은 문이 있다. 이곳에는 붉은 상의에 검은 바지 복장의 기마병 2명과 말레이시아 전통 군복 차림의 일반 병사 2명 등이 지키고 있다. 커다란 체구의 근위병이 위엄을 보이는 유럽 왕궁과 달리 까무잡잡하고 작은 체구의 병사들은 오히려 관광객이 신기한듯 부동자세 속에서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는 모습이 재미있다.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글·사진 박상언 기자 2008.02.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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